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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구정(具程) : 1682년(숙종 8) ~ 1741년(영조 17)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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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무신으로 하남시 감일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장연부사(長淵府使)가 되었으나, 노론과 소론의 당파 싸움을 피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광주 향리에 돌아와 있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가 청주(淸州)에서 난을 일으켜 진천(鎭川)·음성(陰城)을 함락하고 경기로 진격하려 하였다. 당시 정부는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와 같은 소론인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에게 이인좌를 치게 되었다. 이때 노론들은 소론이 일으킨 난리를 소론이 치게 되었다면서 상관하려 하지 않았다. 이를 듣고, 구정은 크게 노하여 “나라가 있은 뒤에 당파가 있는 것인데 국세가 위급하거늘 어찌 노론·소론을 따져서 모르는 체 하리요. 내 비록 노론이지만 이번에는 소론과 협력하여 대적을 파하리라”고 상소하면서 출전을 자청하였다. 국왕은 이러한 구정의 생각을 장하게 여겨 기뻐하면서 오명항의 부하로 있게 하였다. 이때 같이 출전한 장수는 모두 소론이었고 구정만 노론이었다. 그래서 노론은 그를 욕하였고, 소론은 시기하였다. 선봉장이 된 구정은 안성천(安城川)에서 이인좌를 크게 격파하고 죽산(竹山) 조피산(朝避山)에서 이인좌를 사로잡았다. 그 공으로, 그는 공신(功臣)과 봉군(封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그는 노론과 소론의 시비를 두려워하여 사양하였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고 나라의 증직(贈職)도 받지 않도록 훈계하였다. 예전에는 구정의 비각(碑閣)이 죽산 읍내에 있었는데 동학농민항쟁 때 불에 타버렸다. <참고문헌>『廣州郡誌』 ; 『南漢秘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