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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 문화재

하남 춘궁동 동사지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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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8

일반현황
문화재명 : 하남 춘궁동 동사지
종    별 : 사적 제352호
소 재 지 : 하남시 춘궁동 산41번지 일대
지 정 일 : 1991.08.24
       

연 혁
동사지는 하남시 춘궁동 고골저수지 안쪽  금암산(金岩山:322m) 기슭에 있다. 이곳은 예부터 고골 또는 ‘궁마을’로 알려져 왔으며, 동사지 안에는 보물 제13호 춘궁리삼층석탑과 보물 제12호 춘궁리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동사지는 1983년 명문이 있는 기와의 공개를 시작으로 ‘광주동사(廣州桐寺)’로 추정되어 온 이곳은 5층석탑과, 3층석탑의 건립시기가 통일신라 말 이거나 고려초기의 양식을 띠고 있어 근래에 까지 고려시대 광주의 대 호족이었던 왕규와 관계된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여 오면서 백제시대에 건립된 절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과의 논란이 되어왔던 절터였으나 지난 2011년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문화재 대관에 백제시대의 절터일 가능성이 크다고 명시하여 논란을 잠재운 곳이다.
 
동사지는 1988년 4~7월까지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판교~구리간 순환고속도로 발굴조사 때에 ‘桐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銘文)기와를 발견하여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로 이어져 내려온 절터임이 확인되었고, 금당지와 현재의 사찰인 대원사 법당이 있는 중심구역, 저수지를 거쳐 대원사로 오르는 중심구역 앞쪽지역, 절 우측으로 돌아 마애불상이 있는 지역, 석탑 동쪽 순환도로변 지역 등 네 구역의 절터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다른 문헌에 동사라는 절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아 이 절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주변엔 이성산성을 비롯하여 동쪽으론 춘궁동 옛마을과 남한산성, 서쪽으로는 몽촌토성과 암사동선사주거지, 백제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미사동 선사주거지와 백제유구등이 발굴되어 이곳 또한 한성백제 시기에 조성된 사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과 고려시대의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간의 논쟁이 뜨거웠던 지역이다. 그러나 건물터들의 발굴결과 금당지는 총54개로 추정되는 주춧돌 중 19개가 발견되어 정면 7칸(28.9m) 측면6칸(20.8m)에 이르는 기단부로 대형 건물터임이 밝혀졌다. 한편 금당지 안에서 장대석 일부가 유실되었지만 불상대좌의 기단부로 파악되는 팔각석열과 잡석다짐이 있는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한변의 길이가 2.1m 이고 지름이 5.1m에 달하는 규모로 중앙부에 큼직한 심초석이 놓여있는데, 가운데에 사리공으로 추정되는 둥근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으나 사리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발굴단에서는 이 유구를 두고 불상대좌였을 것으로 추정하나  일부 학자들은 팔각불상좌대가 팔각형 안에 심초석이 있고, 팔각주위에 원형이 둘려져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배치된 초석들이 동서27m로 정방형을 이루고 있어 이를 고구려의 금강사지 목탑지와 비교하여 백제의 목탑지였음을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어 아직 이 유구에 대한 정확한 명칭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다.

금당지 주변의 남동쪽 축대부근에서는 소조나발이 발견되었는데, 크기가 큰 것으로 보아 금당에 모셨던 본존불상의 규모는 매우 큰 대형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와 더불어 주변의 다른 건물터들 또한 규모가  20m가 넘고 있어 매우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노출된 금당(金堂)터와 불대좌(佛臺座, 팔각대좌석), 건물터 등 유구(遺構)의 상태로 보아 건축양식 또한 독특하여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백제문화연구회에서 치미조각을 발견하여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건축공학상 황룡사의 치미보다도 크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1993년 당시 여름, 가뭄으로 동사지의 저수지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났는데, 그 언저리에 토기와 와편들이 즐비하여 현재의 저수지 일원 전체가 동사지의 영역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어 그 규모는 상당히 넓고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두 석탑의 동쪽 순환고속도로변 언덕에 길게 형성된 건물지에서는 금당지 주변의 방형 주초석과는 달리 원형 초석들이 남아있는데, 지역적으로 다른 건물지들과 함께 조성된 사역으로 추정하는 이곳에서 1971년 병, 완, 화로, 향로, 접시, 발, 잔, 대야등 200여점의 청동불구류들이 도굴된 뒤 국가귀속처리와 함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발굴을 통하여 출토된 유물은 대종을 이루는 기와를 비롯하여 전, 소조불상편과 소조나발, 토기 및 자기편, 철못등이 있다. 특히 기와는 암막새와 수막새, 암키와와 수키와, 명문기와, 귀면와, 연목기와로 봉황무늬를 비롯한 연화문, 당초문, 넝쿨무늬등 그 문양의 화려함이 돗보이며, 연꽃무늬 수막새는 5엽, 8옆, 10엽, 12엽등 다양하여 상당히 공을 들인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이 주변에서 기존의 추정과는 달리  그 년대가 시기적으로 앞선 기와편들이 다수 별견되는 점으로 보아 백제시대의 옛 절터일 가능성이 크다고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문화재대관에 명시하고 있어 백제시대에 건립하여 고려시대에 오기 까지 계속 보수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하남지역은 옛 한성백제시기의 첫 수도인 위례성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