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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 문화재

열녀 완산이씨 묘역 및 석물

하남문화원 │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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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

기본현황
문화재명 : 열녀 완산이씨 묘역 및 석물
종    별 : 향토유적 제13호
소 재 지 : 하남시 감일로142번길 118(감일동)


연 혁
열녀(烈女) 완산이씨는 정종의 15번째 아들인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의 손녀이며, 명천도정(明川都正) 이장손(李長孫)의 딸이다. 영의정 성준(成俊)의 아들인 성경온(成景溫)에게 출가하여 1남 3녀를 낳았다. 성경온은 1483년(성종 14) 진사시에 합격한 후, 1503년(연산 9)에 문과별시에 합격하여 공조정랑에 올랐으나, 1504년(연산군 10) 아버지 성준이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류되어 교살되자 성경온도 유배되었다가 자결하였다.

광주 정림산(井林山)에 장사지냈는데, 부인 완산이씨가 묘 옆에서 여막살이를 하며 조석(朝夕)으로 제수를 손수 올렸다. 상을 마친 후에도 평생 흰옷을 입고 고기를 입에 대지 않으니 중종이 그의 절행을 가상히 여겨 정려(旌閭)를 내렸다. 완산이씨의 아들 성남(成覽)은 홍달정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4녀를 낳아 후사가 없다. 3녀 중 맏딸이 진사 구원지(具元之)에게 출가하여 사위 구원지가 둘째 아들 구징(具徵)으로 하여금 외손봉사하게 하였다.

그런 연유로 완산이씨 묘 아래로는 외손봉사를 한 구징의 묘가 위치하였고, 그 아래로 구징의 장남 구효연의 묘가 위치하게 되었다. 완산이씨의 묘는 성경온과 합장한 원형의 봉토분이며 석물은 성경온의 묘갈과 망주석 1쌍이 남아 있다. 성경온의 묘갈은 신용개(申用漑)가 비문을 짓고, 김희수(金希壽)가 글씨를 썼다.